많은 분들이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했다고 알고 계시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고려시대에도 한글과 유사한 문자 체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을 넘어, 우리 고유 문자의 뿌리를 다시 살펴보게 하는 중요한 논의입니다.
고려시대의 문자 환경
고려시대는 기본적으로 한자(漢字)를 공식 문자로 사용했습니다. 관리 문서, 학문, 외교 등은 모두 한자로 기록되었으며, 이는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도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한자를 배우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구결(口訣), 향찰(鄕札), 이두(吏讀)와 같은 보조 표기법이 발달했습니다.
- 구결: 한문 문장을 읽기 쉽게 하기 위해 우리말 어순에 맞춰 토를 단 것
- 향찰: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표기법으로,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은 방식
- 이두: 관청 문서나 실무에서 사용된 표기법으로,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한국어를 표현
이러한 표기법은 한글의 직접적인 전신은 아니지만, 우리말을 문자로 기록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고려시대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고(古)한글’ 논의
최근 일부 학자들은 고려시대 문헌에서 발견된 특이한 문자 기록을 근거로, 훈민정음 이전에도 독자적인 문자 체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요부(寒窯賦) 타ᄉᆞᆷ오해』라는 문헌에서 기존 한자와는 다른 표기 방식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고한글’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물론 주류 학계에서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가 최초의 체계적 문자 창제라는 입장이 여전히 우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견은 고려시대에도 이미 우리 고유 문자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한글은 고조선 문자에서 유래”
천.지.인 삼재와 사람의 발성기관을 모방해 다른 문자를 참고하지 않고 독창적으로 창제됐다는 한글. 하지만 북한의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25일 고조선에서 고유문자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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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자 연구의 의의
고려시대에 한글이 있었다는 주장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 여부를 넘어,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자국어를 기록할 수 있는 독자적 문자를 갈망해 왔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문자 필요성
- 한자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문화적 자각
- 후대 훈민정음 창제의 토대가 된 언어적 실험
정리하자면, 고려시대에 오늘날의 한글과 동일한 문자가 존재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글의 창제 이전에도 우리말을 기록하려는 다양한 시도와 문자적 흔적이 존재했음은 분명합니다. 이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임을 보여줍니다.